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비 마립간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신라 역대 [[임금]] 중에서도 주목받는 편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신라 초기의 숨겨진 [[명군]]. 축성으로 [[나라]] 방비를 튼튼히 했고 [[왜]]의 침략도 격퇴했으며 [[행정]]적 업적을 남기는 등 전임 왕인 [[눌지 마립간]], 후임 왕인 [[소지 마립간]]과 함께 6세기 신라의 국력 신장 토대를 닦은 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. 《한국 고대 전쟁사》의 저자인 [[임용한]] 교수도 자비 마립간을 높이 평가했다. * [[백결선생]]이 자비 마립간 시대의 인물이다. * 《[[삼국사기]]》에서는 왕비의 아버지가 [[미사흔]]으로 나오지만 《[[삼국유사]]》에서는 다르다. 자비 마립간 왕비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파호 [[갈문왕]], 자비 마립간의 아들인 비처 마립간(소지 마립간)의 어머니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미흔(未欣) 각간이라고 나온다. 그래서 미사흔과 동일인물이라는 가설과 [[김복호]]와 동일인물이라는 가설이 있다. * 즉위 10년의 전함 수리 기사는 《[[삼국사기]]》 내에서도 몇 안 되는 [[해군|수군]]에 관한 기록이다. 신라 역시 [[왜구]]들 때문에 수군에 신경을 쏟은건 분명하다. 왜와의 전투 과정에서 수군이 활약하는 장면을 찾기는 어렵다. 수군이 존재했다면 이들이 왜군의 공격을 막아주거나 혹은 수적으로 [[중과부적]]이라 초기 방어에 실패하더라도 퇴각하는 적들을 공격하는 식의 기록이 존재할텐데 찾기 어렵다. 신라는 왜군에 비해 [[바다]]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아서 수전은 피해야 한다는 등 신라 상대에는 수군이 빈약함을 말하는 기록이 많다. 신라 수군이 제대로 활약하기 시작하는 건 [[삼국통일전쟁]] 시기 즈음으로 이 때부터는 [[당나라]] 수군을 상대로도 선전이 가능할만큼 발전하게 된다. 다만 왜측 기록에는 [[신라의 일본 침공 사례]] 관련 기록이 있어 신라 수군 관련 기록이 누락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